안토니 가우디가 본명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이며 바르셀로나를 세계의 명소로 만들어낸 건축가의 아버지다.
바르셀로나 건축전문학교에 입학한 가우디는 25세라는 이른 나이에 건축사 자격증을 딴 후 여러 프로젝트를 수주받으면서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된다.
1878년 카사 비센스를 건축하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그 후에 돈많은 부자 구엘백작을 만나게 된다. 1883년에는 구엘 가의 가문 건축가가 되었으며 ‘구엘’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축물을 대대적으로 건축하기 시작한다.
그의 역작으로 구엘공원을 들 수 있는데 돌로 만든 길고 긴 벤치는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돌로 만든 벤치인데도 불구하고 누구나 앉으면 너무 편안해서 집집마다 있는 소파에 비할바가 아니다.
또 다른 그의 건축물은 바트요씨의 집을 리모델링해 재건축한 ’까사 바트요‘인데 그 안의 모든것은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손잡이까지도 사람이 손잡이를 잡았을 때 편안하고 손안으로 전해지는 감성적인 느낌은 가우디 아니고는 생각하지 않는 특별한 천재적인 발상이다. 물론 바트요씨의 주문에 의한 것이었지만.
’까사밀라‘도 그의 작품중에 하나인데 많은 이야기와 사연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가우디라는 건축가를 탐색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될 것 같다.
가우디의 역작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을 들 수 있는데,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어질 정도로, 신의 가호가 아니면
이루어낼 수 없는 건축물이다.
펠립네리 성당은 가우디가 죽기전에 아침 일찍 매일 기도를 드린 성당으로
가우디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성당에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전차를 피하다 반대편에서 오던 전차에 치어 73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가우디의 시신은 가우디가 마지막까지 열정을 쏟았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지하묘지에 단장되었으며 그를 복자로 시복할 것을 건의하는 운동이 있었는데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성가정 대성당의 수난의 파사드 부분을 맡은 수비라치는 이미 가우디를 성인으로 간주해, 성상 사이에 가우디의 옆모습을 본떠 끼워 넣어 두었다.